[연극] 웃어요 할매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오후4시
일터소극장
캐스팅
진선미, 조기정, 임정남, 윤순심
저는 제법 무딘편이라 지금 껏 살면서 눈물을 보인적도 별로 없을 뿐더러,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은 세대라 그런지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질때면 왠지 모를 창피함이 먼저 드는 구식인지라
마음놓고 펑펑 울어본 기억도 없이살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지난주엔 팽목항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이 연극 <웃어요 할매>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에서 뜨거운 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연극은 제목과는 다르게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밀양 송전탑 할매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연극을 준비하기 위해 밀양으로 답사도 가고,
취재도 다니면서 준비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일까요?
시래기 말리는 것에서 부터,
멀리 도시에 시집가고 싶었지만 겨우 강하나 건너 시집 오게된
할매들의 삶의 소소한 이야기 들이 잘 녹아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진짜 할매가 아닌가 싶을정도로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라는 기본 위에
준비된 MR로 배경음악을 트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라이브 연주와 노래를 배경으로 사용 하고
수제비를 끓이는 장면에서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끓여서 관객에게 대접하며
실제 밀양 행정대집행때의 영상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현장의 생생함을 연기가 아니라 직접 느끼게 해주는 등의
특별한 장치들의 적절한 사용 또한
극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공연 중에 할매들의 이야기에 공감한
많은 관객들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연을 보는 내내
할매들이 싸우고 있는 현재만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이 할매들이 왜 이런 힘겨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밀양의 사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단순히 연극만 보고 판단을 한다면,
그냥 아버지가 고향 선산을 지키라고 해서 물맑고 산세좋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나? 라고
오해나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단순히 이런 이유라면 님비(NIMBY)라고 욕을 먹어도 할말이 없을테니까요.
실제로 극중에 송전탑 번호가 계속 나오니까 그게 뭔지 몰라서 옆사람에게 물어 볼 정도로
밀양 문제를 이번 연극으로 처음 접하게 된 사람도 있었고,
너무 심하게 흐느껴서 거슬릴정도로 훌쩍거리던 제 앞의 한 남자관객이 있었는데,
그분이 극이 끝나고 같이온 사람하고 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되었는데
할매들이 왜 싸우는지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자신의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었다. 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아 그냥 저런 사람들 한테는 단순히 싸우자고 선동하는 것 밖에 안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을 울린 연극. 저도 울고, 옆사람도 울었지만
제가 우는 이유와 옆사람이 우는 이유가 다르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제법 남습니다.
물론 연출의 의도가 어떻든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관객들의 해석이 진정한 재미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만,
이런 사회문제를 다룬 극에서는 바탕에 깔려 있는 팩트를 조금더 전달할 수도 있지않았을까요?
왜, 가난하고 못배운, 그래서 정부와 한전의 행태 그리고 전기에 대해서 무지했던 촌 할매들이
이제는 반 전기전문가가 될 정도로 10년의 세월동안 모든것을 내려놓고 싸울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야기 해줬다면
앞에서 굳이 함께 싸우자! 라고 백번 선동 하는 것 보다
극을 본 관객의 마음에서 우러나서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밀양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극중에 그냥 돌아가셨다는 한마디 대사로 넘기고 마는 이치우 어르신의 이야기도
밀양 시장의 친척이 하는 산청농원을 피해가기 위해서
굳이 D자로 돌아가느라 보라마을 논 한복판에 박히게 된 송전탑의 이야기 라든지
앞서 시래기 말리는 것의 디테일 처럼
이런 부분에서도 소소하게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지금 밀양에는 아직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작업이 남아 있긴 하지만
송전탑을 세우는 공사 자체는 완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매들은 아직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극을 통해서라도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극이라 생각 됩니다.
스토리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은 차치하고
순수하게 '연극'으로만 본다면
배우들의 연기나 특별한 장치들을 적절히 사용한 연출 또한 좋았습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울먹이는 관객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이입에도 성공했다는 반증이겠지요.
영남루 앞에서 부르던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를
부산의 도심에서 부르는 것도 색다른 경험 이었습니다.
그나마 로멘틱코메디만 팔리는 지방 공연무대에서
앞으로도 이런 무게 있는 공연이 많이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추가로, 송전탑 투쟁을 하고 계시는 할매들 중에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찾길도 없이 오솔길만 있던 시절에
건강상의 이유로 맑은 공기와 자연을 찾아서 평밭마을로 오신 이사라 할머니가 계십니다.
맑은 공기와 자연이 자신의 병도 치료 했다며,
지금도 그 시절 그 오솔길에 피어있던 꽃들을 떠올리시며 얘기하실때는
어린애 처럼 깡총깡총 뛰면서 좋아 하시는..
아직도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신 이사라 할머니의 영상을 첨부 합니다.
지난 여름에 평밭마을에 들렀을때 촬영한 영상인데,
여러 할머니들의 말씀 중에서도
"이대로만 살게 해달라"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가슴 한곳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할매들 말씀처럼 아직 끝이 아닙니다.
찾아보면 굳이 밀양에 가지 않더라도, 한평프로젝트나 미니팜 같은
우리가 집에서도 쉽게 밀양을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차피 어디 이민이라도 나가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서 살 수 없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토요일날 본 연극인데 아직까지 마음이 무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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