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안내놔 못내놔

2014년 3월 9일 일요일 오후4시 소극장 디코


더블캐스팅:

조반니 : 노형우

안토니아 : 이경진

멀티맨 : 이재욱


백만년 만에 올리는 공연 후기.

사실 얼마전 사.이.다 부터는 다시 열심히 후기도 올려야지 생각만 해놓고 정작 이번부터 쓰기 시작하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최근들어서 예전엔 그렇게 재밌게 봤던 대학로 스타일의 코메디에 별다른 감흥을 못느끼고 있는데

연극 '안내놔 못내놔'는 시놉시스만 보고도 관심이 많이 생긴 공연이었다.


다리오 포 라는 작가 자체는 노벨 문학상을 타기도 했고,

그 해 영국인들이 뽑은 '살아있는 천재 100인' 명단에

유일한 이탈리아 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원체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들은 '작가는 반드시 시대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따라

우리 현실 사회의 이슈들을 요절복통할 코미디 형식으로,

그러나 날카롭고 무게 있게 정치적 풍자를 가하는 것으로 유명 하다.

이런 그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풍자가 이 작품 속에는 어떻게 녹아 있는지 궁금 하기도 했고,

원작의 이탈리아 라는 시대적 배경을 어떻게 지금의 한국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왔을지,

거기에다 '생계형 코미디'라니! 말장난 코미디 보다는 상황극에 더 관심이 있기도 한편이어서

공연을 보는 중에도 이런 부분에 더 중점을 두고 보았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실제로 있었던

주부들의 슈퍼마켓 습격 사건이라고 한다.

극의 시작은 이 슈퍼마켓 습격 씬으로 시작을 하는데,

부산에서 공연되는 연극 답게 화폐단위도 리라에서 원으로 바뀌고,

안토니아도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대사를 진행한다.


우연히 슈퍼마켓 폭동에 가담하게 되어

물건을 훔쳐온 안토니아와 마가리타.

너무나 정직하다 못해 답답하기 까지 한 안토니아의 남편 조반니에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서 시작된 거짓말이

경찰의 가택수사, 퇴근 후 집에 없는 아내 마가리타를 찾으러 온 루이지 등,

등장 인물이 하나, 둘 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극의 플롯은 선량한 노동자, 평범한 주부들까지 폭동에 가담하게 되고,

이어지는 우스꽝스럽기 까지한 사건들이 전개 되면서 감정의 상승곡선을 타다가

조반니가 생각을 달리 먹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후 들통난 아내의 거짓말과 그동안 밀린 공과금 등으로 인한 갈등이 있고,

화해로써 마무리를 짓는다. 


연극을 보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초지일관 곧고 바른 이미지를 보여줬던

조반니가 사고트럭 씬에서 생각을 달리 먹게될 때, 너무 급작스러운 느낌이 들어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물론 정리해고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된것과

정부나 밀수업자 같은 이들이 모두 한 통속이라는 것을 알고 분노를 하긴 했겠지만

앞선 상황들에서도 윗사람들로 지칭되는 정부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 했던 그였기에

조금은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고, 그로인해 생각을 바꾸게 되었더라면

감정이입이 더 잘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신 배우들이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웃는 장면이라면 상관없는데,

극내에서 상황은 심각 하되, 관객의 입장에서 웃긴 장면을 연기 할 때는

물론 사람이니까 힘들겠지만 배우들이 더 진지할 수록 관객의 웃음이 배가되는 법인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부분이나, 대사를 더듬는 부분 또한 몰입을 방해 하기도 했다.


그리고 포스터에는 멀티맨 역에 장의사도 포함 되어 있는데,

내가 공연을 본 날은 장의사 씬은 등장하지 않았다.

원작에서는 조반니와 루이지가 포대를 훔쳐서 달아나다가

루이지의 집으로 먼저가서 장의사를 만나게 되고

훔쳐온 포대를 관에 넣어 조반니의 집으로 옮기는 것으로 알 고 있다.

항상 공연이란게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

그런 재미로 같은 공연을 여러번 보기도 하지만,

원래 장의사 씬이 빠진건지, 내가 본 날만 빠졌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몇가지 단점을 지적 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밀라노를 2010년대의 부산으로 적절하게 옮겨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과

안토니아를 맡은 이경진님의 찰진 사투리 연기는 후한 점수를 줄만한 공연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 쯤에서 왜 돈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냐는 조반니에게

그럼 당신은 왜 물어보지 않았냐고 우는 안토니아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 하기도 했다.


공연을 보고 나와서 조반니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비록 그 자신도 사고 트럭에서 포대를 훔쳐 오긴 했지만,

아내의 슈퍼마켓 절도에 대해서는 화를 내는 그. 결국 평범한 인간이기에 그런것 아닐까.

최근들어서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조반니 자신도, 트럭 사건으로 인해 20년만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순간에 180도 바뀐 사람이 되진 않았을 터,

안토니아는 조반니를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둘은 그렇게 살아 가겠지만,

혁명의 시기를 그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Posted by 5C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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