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검정고무신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4시 용천지랄소극장


극단 에저또:

  진실 役: 김지연

  야동 役: 이지훈

  갑동 役: 김기태

  양동 役: 이주현

  봉실 役: 남성옥



나는 부산과 인접한 김해 사람이지만

부산 극단이 만들고 부산에서 초연한 연극을 부산이나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광주에서 보았던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몇년 전,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광주유스퀘어 동산아트홀에서 처음 '묻지마 육남매'를 보았을 때,

셋째 천식이로 나온 최재민님이 바람잡이를 하실때 까지는

그냥 단순히 '아 저분은 부산 사람인가보다' 생각 했는데,

나중에 공연 시작 전에, 극단 소개와 공연에 대해서 직접 말씀해 주셔서

부산 극단이란것을 알고 괜시리 더 반가웠던적이 있다.


이번에 본 '검정고무신'은 마침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께 보여드릴 공연을 고르다가

그때 본 '묻지마 육남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길래

연세가 있으신 어머니도 좋아하실만한 연극 같아서 고르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공연을 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묻지마 육남매'와 이번 '검정고무신'이

어디가 얼마나 달라졌나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우선 주인공들의 이름이 첫째부터

차력사가 꿈인 첫째 기식이가 둘째 야동이로,

억척스러운 집안의 기둥 둘째 억순이가 첫째 진실이로 바뀌었다.

그리고 속깊은 구두닦이 셋째 천식이는 갑동이로

먹을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는 먹보 넷째 두식이는 양동이

귀여운 다섯째 모순이는 봉실이로

그리고 막내 말없이 과묵한 말식이는 업동이로

이렇게 등장인물의 이름과 첫째와 둘째 순서가 바뀌었다.

이름은 다른건 모르겠는데 억순이는 바뀌기 전이 어울리는 것 같고

업동이는 바뀐후가 잘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셋째 천식이를 좋아하는 여학생이 나오는 씬도 있었고

뻥튀기씬도 있었던것 같고,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씬도 있었던것 같은데 빠진 것 같다.

나도 '묻지마 육남매'를 본게 벌써 한 3년 전이다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가지 씬들이 생략이 되고,

차력사 쑈 같은 부분은 간소화 되면서 전체적으로 분량이 짧아진 듯한 느낌이다.



몇가지 칼질(?)이 있기는 했어도

극의 전체적인 플롯은 크게 달라진것 없이

60-70년대 우리 부모님 세대의 못먹고 못입던 힘들었던 과거를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가슴아프게 풀어 나간다.


'묻지마 육남매'나 '검정고무신'을 보고

흔히들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연극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던데, 그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눈깔사탕 씬만하더라도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께서는

'그래 옛날에는 진짜 저랬다'를 연신 남발하셨다.

보기에는 그저 더럽고 웃긴 장면중에 하나 일지 모르지만

우리 윗 세대에게는 또다른 아픈추억의 장면으로 말그대로 '웃픈' 장면인 것이다.

하지만 그시대를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들도,

그 웃긴 장면이 단순히 웃기기만한 장면은 아니란것 쯤은 누구나 안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관객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는 이 공연은

탄탄한 연출도 한 몫 하지만,

배우들의 내공과 개인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 시작전에 처음에 다른 분들이 새로운 얼굴이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김지연님이 이지훈님과 나오는걸 보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김지연님의 카리스마는 몇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최고인것 같다.

육남매 후기중에도 다른 분이 김지연님을 사석에서 한번 뵙고 싶은 분이라고 쓴글을 본적이 있는데,

김지연님은 진짜 사석에서는 어떨지 한 번 뵙고 싶은 분이다.


육남매에서 보았던 반가운 분들이야 이미 연기력은 검증이 되신 분들이고,

이번에 새로본 분들도 정말 열심히 나무랄데 없이 잘해주셨다.

특히나 남성옥님 어쩜 그렇게 순간 감정을 몰입해서 폭풍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진심으로 대단한 것 같다.



내가 관람한 날은

배우분들은 이렇게 좋은 공연을 위하여 열심히 연기를 하는 와중에

오히려 관객이 더 공연을 망쳐서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였다.

내 바로 뒷줄에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는

한창 슬픈장면에서 감정이입 해야할 시점에

절묘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

뭐 벨소리 난것도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실수로 벨소리 났다고 쳐도,

그럼 얼른 끄던지 하면  될건데,

태연히 전화를 받아서 통화를 하고 있는 이 아줌마 -_-;

그것도 무려 이 아줌마가 전화를 한통도 아니고 두통씩이나 받았다;;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두번째에는

그아줌마 다리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노려 봤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통화를 꿋꿋히 다하고 끊던.;

마치고 나올때 당신같은 사람은 그냥 영화나 보러 다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옆에 계신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한게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


어쩌면 정극이나 모노드라마 같이 좀 무거워서라도

일반적으로 많이 가지 않는 공연 보다는

'검정고무신'같이 나이 많은 어르신 부터

꼬맹이들에게 이르기까지 세대를 다 아우르는 공연이

연극의 특성상 공연 자체 내용보다도 관객들 때문에 생기는 변수들 때문에

배우분들에게 더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관객들 때문에 공연중에 김지연님도 위기가 살짝 있긴 했지만

애드립으로 굉장히 잘 넘기시는걸 보면서

뭐랄까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요즘 공연들을 보다 보면,

관객 상관없이 심각해야 하는 장면인데 웃음을 참지 못한다든가

조금 삐끗했다고 이후씬을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는 배우분들이 제법 보이는데,

관람매너 빵점인 관객을 앞에 두고도

평정심을 읽지 않고 멋진 연기를 해주신 배우분들에게 정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사실 몇년전 '묻지마 육남매'를 보았을 때는 so so.

딱히 나무랄만큼 나쁜점도 없었고,

재미도 있는 공연인건 맞지만 딱히 내스타일은 아닌,

그런 공연이었다면,

이번 '검정고무신'은

옆에서 함께 본 어머니로 인한 감정이입이 커서일까.

대본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극장이나 시설은 오히려 더 안좋아 지고,

내용도 빠진씬들이 있어서 줄어든 느낌이고

기본적인 관람매너 조차 없는 사람들로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감동은 배가 되는 멋진 공연이었다.


딱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육남매 공연때 정말 인상깊었던 장면중에 하나가

기식이가 돈을 훔쳐간뒤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여

억순이가 혼잣말로 한숨쉬며 읊조리듯이 대사를 하는 부분이

그 마음을 정말 잘 와닿게 표현해 주어서 가슴뭉클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장면에서 감동을 기대하고 봤었지만

편집된건지 아니면 전화통화 아줌마 때문에 집중을 못해서 내가 놓친건지

그부분에서 예전의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ㅠ_ㅠ 


오픈런이라서 언제 막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평일 사람이 좀 없을때 가서

조용한 분위기에서 방해꾼없이 몰입해서 다시 한 번 보고싶다.


수고하신 배우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고생 많으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Posted by 5C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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